
중계 방송의 코어, 캐스터
지난 번 한명재캐스터에 이어 이번에는 축구캐스터의 대명사가 된 김성주캐스터에 대해 필자가 쓴 "쿠팡은 왜 올림픽 방송을 욕심 냈을까" 에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하려 한다.
예능과 스포츠를 넘나들며 전성기를 누리는 김성주
김성주 캐스터는 한명재와 97년 한국 스포츠 TV 캐스터 동기다. 김성주는 MBC 입사 전 한국 스포츠 TV에서 스포츠 캐스터로 다양한 종목을 섭렵할 수 있었다. 그런 경력 때문이었는지 MBC 입사 후에도 스포츠 캐스터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스포츠 뿐만 아니라 뉴스, 교양, 예능까지 전천후로 불려 다녔다.
김성주의 스포츠 캐스터를 향한 노력은 대단했다. 챔피언스 리그 경기 중계를 앞두고는 모든 스케줄을 마치고 아무리 늦어도 방송국에 다시 들어와서 하는 일이 있었다. 중계할 두 팀의 직전 90분 경기를 각각 모니터한 것이다. 새벽녘이 돼서야 퇴근하곤 했는데, 그 열정이 독일월드컵 메인 캐스터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김성주는 2006년 독일월드컵 캐스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입사 3년차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마지막 경기였던 3,4위전 터키전 중계를 맡았다. 다음 독일월드컵 준비를 위한 큰 그림이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차범근, 차두리와 3인 중계를 시도했다. 김성주는 차두리의 솔직한 입담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아주 잘했다. 그들이 남긴 어록도 시시각각 뉴스화되었다.
< 2006. 6. 14. 스페인 VS 우크라이나 >
축구장 귀빈석엔 스페인의 펠리페 왕자 부부가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고
중계 화면은 스페인 왕자 부부와 경기장의 선수들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스페인 왕자 부부임을 알지 못한 김성주 아나운서가 관중석과 경기장의 선수들의 물 먹는 장면이 번갈아 나오자
김성주: 선수들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귀빈석에서는 아주 우아하게 마십니다. 귀빈석에 앉아 있는 분을 계속 비춰주고 있는데요.
------- 침묵 ------
차두리 : 아.. 스페인의 왕세자와 왕세자비로.. 지난번 UEFA컵 결승 세비아와 미들스브로 전에서도 나타나 세비아가 우승하자 같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격려해 준 적이 있습니다.
김성주 : 차두리 선수는, 아는 사람이 나오면 빨리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순간 당황했어요..
차범근 : 저도 몰랐습니다.
김성주 : 차두리 선수만 알았어요....

< 2006.06.12 호주 VS 일본 >
김성주 : 2002년 당시 한국과 미국전 때 하프타임 라커룸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차두리 : ...... 아 그땐 제가 후보선수였기 때문에 계속 그라운드 벤치에 앉아 있어서 라커룸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김성주 : 아.... 네.
차두리 : 밖에서 몸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죠. 죄송합니다.
김성주 : 아니요 죄송할 것까지야.
차범근 : 제가 다 땀이 나네요.
차두리 : 자, 경기 보죠.
시청자들은 차범근과 차두리 부자의 이러한 솔직담백한 대화에 열광했다. 어록은 차범근과 차두리가 남겼지만 그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 김성주의 공이 크다. 권력과 방송 욕심은 부자 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어려운 걸 김성주가 해냈다. 차범근과 차두리 부자의 멘트를 잘 조율했고, 그 결과, 당시 독일 월드컵 MBC 중계 시청률은 매 경기 30%를 넘었다. 나머지 2개 채널을 합해도 이기지 못할 압도적인 1위였다. 김성주는 축구 중계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해 특유의 재미 요소를 끌어내어 3인 중계와 함께 새로운 방송 패턴을 만들어냈다.
김성주의 성공 요인은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능 프로그램으로 한창 바쁜 와중에도 방송국에 늦게까지 남아 앞으로 중계할 팀의 직전 경기를 섭렵하는 캐스터는 흔치 않다. 당연하고 쉬워 보이지만 이렇게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신뢰감 있는 음색, 핵심을 잘 잡아내서 표현하는 능력이 월등하다. 무슨 종목을 맡겨도 포인트를 잘 짚었다. 그의 진행 능력은 차차 부자와의 3인 해설 체제에서 입증됐다.
김성주는 독일월드컵이 끝나고 프리 선언을 했다. 그의 프리 선언으로 다들 주위에서는 그가 스포츠 캐스터로서 끝났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는 방송사는 김성주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스포츠 캐스터로 돌아온 김성주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캐스터로서의 그의 능력을 입증하며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중계방송을 선물했다. 모든 시청자는 최고의 방송을 볼 권리가 있고 그것은 그대로 시청률로 나타났다.
소치올림픽 때 이상화 선수의 빙상 500m 결승 경기를 김성주 캐스터가 중계했다. 이상화 선수가 뛴 500m는 대략 40초가 걸린다. 이 짧은 시간을 김성주 캐스터는 정말 혼을 담아 중계를 했다. 듣는 내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 당시 나는 헤드폰으로 캐스터 소리와 현장의 소리를 분리해서 듣고 있었다. 김성주 캐스터의 말만 따로 듣고 있었던 건데 그 목소리의 떨림까지도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 떨림이 현장 소음에 묻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청자들도 그 떨림과 감동을 온전히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속으로 ‘김성주 미쳤다!’를 여러 번 외쳤다. 후에 김성주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캐스터 이전에 응원단이라는 사명감으로 목이 터져라 중계를 했다고 한다.
이런 감동과 진한 여운은 스포츠 피디인 나만 느낀 게 아니다. 당시 시청률은 21.9%(순간 최고 시청률 41.6%), 동시간대 압도적 1위였다.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김성주 캐스터의 제2의 전성기가 언제 시작됐는지 그 지점이 바로 보일 것이다. 김성주는 소치 동계 올림픽 이후 예능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브라질월드컵에선 이영표에 밀려 시청률 2등을 했지만 안정환 서형욱과 짝을 이룬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당당히 시청률 1등을 차지했다. 흐름을 읽고 말할꺼리를 찾아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음편에는 김성주 2회와 송인득캐스터에 대한 얘기도 계속 연재하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요즘 캐스터나 배성재캐스터에 대한 제 생각도 밝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